염려가 생길 때
명절이 되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 친지들과 반가운 안부를 나누며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질수록 각 가정마다 품고 있는 여러 염려와 근심을 마주하게 됩니다. 건강과 자녀, 취업과 노후, 주택 문제에 이르기까지 염려는 어른뿐 아니라 어린아이에게도 찾아오는 인생의 필연적인 그림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마 6:25).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나 조언이 아닌, 주님의 권위 있는 선포입니다. 주님께서 염려를 내려놓으라고 명하신 이유는 염려가 우리의 영혼과 삶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재물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려 할 때 찾아오며,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을 때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염려의 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염려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믿음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더 귀하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이십니다. 또 들의 꽃은 수고하거나 길쌈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입히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새와 꽃도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얼마나 더 귀하게 돌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가 찾아올 때 우리는 문제의 크기보다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다 아신다”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염려가 생기면 하나님께서 내 형편을 모르시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뿐 아니라 무엇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무엇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지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아뢰되,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을 알려드리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다 아시는 아버지께 맡기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 아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염려는 감사의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셋째는 “더 하신다”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고, 오늘 해야 할 순종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염려는 줄어들고, 하나님의 더하심의 역사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순종은 손해가 아닙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더하심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명절과 일상 속에서 염려가 엄습할 때마다 주님의 권위 있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더 귀하다, 다 아신다, 더 하신다”라는 ‘더·다·더’의 믿음을 선포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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