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저주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라는 특별한 인사를 남깁니다. 당시에는 대필자를 통해 편지를 쓰는 일이 흔했지만,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며 직접 펜을 들어 마지막 말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직접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매우 강한 경고를 남깁니다. 또 바울은 저주의 말 뒤에 “마라나타(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를 덧붙임으로써,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직접 손으로 써가며 무언가를 강조하고자 저주라는 말로 경고하고 마라나타를 통해 중요한 기준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는 먼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억지로 애쓰기보다,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모습은 ‘존중하는 사랑’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과 희생의 무게를 알수록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수록 하나님을 가볍게 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경외’라고 표현합니다. 경외란 하나님을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귀하고 크신 분으로 알고 그분과 그 말씀을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은 ‘소중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함께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사람을 나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무너뜨리고 원망과 무관심에 갇히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슬을 끊어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존중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