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이름들
세상은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많은 것을 이루어 낸 사람,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며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의 모습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는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왕이나 권력자도 아니었고, 세상이 주목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권면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이름이 성경에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도 이러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기억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스데바나의 가정은 성도들을 섬기는 데 몸을 바쳤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다른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또한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부족함을 정죄하지 않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 채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쳐 있던 바울과 성도들의 영을 쉬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방문과 교제는 무거웠던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새 힘을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섬김, 채움, 쉼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섬기고,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지친 마음에 쉼을 주는 공동체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찾아내어 지적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한 자리에 내가 들어가 채워 주는 일에는 사랑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말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그 사람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일에도 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섬기고, 채우고, 쉼을 주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채울 수 없었던 죄와 의의 부족함을 십자가의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를 부르셔서 참된 쉼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도를 섬기고, 빈자리를 채우며, 지친 영혼에 쉼을 주는 삶은 누군가의 마음에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삶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번 한 주간, 성도를 섬기고, 부족함을 채우며, 지친 사람의 영혼에 쉼을 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되는 복된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